제9회 진광예가 수난을 당하다——강류가 원한을 갚고 아버지를 되찾다
진광예가 과거에 급제하여 강주 자사로 부임하던 중 뱃사공 류홍에게 살해당한다. 류홍은 아내를 가로채고 태어난 아기를 강에 버리나, 아기는 금산사에서 자라 강류가 된다. 성장한 강류는 어머니를 찾고 복수를 이루며 아버지까지 되살린다.
당나라 장안, 재상 **은개산(殷開山)**의 딸 온교(溫嬌) — 사람들이 '만금소저'라 불렀다 — 는 아름답고 총명하여 남편감을 고르는 데 색다른 방법을 썼다. 누구든 수를 놓은 공을 받는 자와 혼인하겠다는 것이었다. 뭇 선비들이 몰려들었고, 그 공이 날아가 닿은 이는 바로 **진광예(陳光蕊)**였다. 어느 고을 출신의 가난한 선비였으나 뜻이 곧고 재주가 뛰어났다.
때마침 진광예는 과거 시험에서 장원급제하였다. 황제가 그를 칭찬하고 강주(洪州) 자사로 임명하였다. 진광예는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강주를 향해 길을 떠났다. 어머니는 홍주에서 맡아달라 하여 잠시 그곳에 머물게 하고, 부부 둘이서 배를 탔다.
뱃사공은 **류홍(劉洪)**과 이표(李彪), 두 사내였다. 이들은 배 위에서 온교의 미모를 보고 눈이 뒤집혔다. 밤이 깊어지자 류홍이 진광예를 죽여 강물에 던졌다. 그리고 진광예인 척 행세하며 온교를 협박하였다.
온교는 이미 아이를 밴 몸이었다. 죽임을 당하면 아이도 살 수 없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때가 되어 아들을 낳았다. 아이를 강에 보내 구원을 청하기로 결심한 온교는 속곳을 뜯어 편지를 썼고,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남겼다. 아이를 나무판자에 올려놓고 젖을 물리며 속삭였다.
"살아남아라. 살아남아서 외할아버지를 찾아가거라."
나무판자가 물 위를 흘러 내려가 금산사(金山寺) 앞에 닿았다. 법명 화상이 판자 위의 갓난아이를 발견하고 거두어 돌보았다.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고, **강류(江流)**라는 이름을 얻었다. 절에서 공부하고 글을 배우며 총명하게 성장하였다.
열여덟이 된 강류는 어느 날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아비도 어미도 없는 것이!"
법명 화상이 이때 사실을 알려주었다. 어머니의 혈서 편지를 건네주며 말했다.
"네 어머니가 이 편지를 남겼다. 장안으로 가서 외할아버지 은개산 재상을 찾아가거라."
강류는 편지를 품에 안고 장안으로 달려갔다. 재상부에서 편지를 건네받은 **은개산**이 눈물을 쏟으며 당장 군사를 이끌고 강주로 내려갔다. 류홍과 이표는 붙잡혀 현장에서 처형되었다.
강물 위에 핏빛 편지 흘려보내며,
어미는 기다리고 아비는 물속에 잠들었네.
열여덟 해를 절에서 자라난 아이,
검을 들지 않아도 하늘이 원수를 갚으리.
온교는 아들을 보자마자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그런데 진광예의 시신은 어떻게 찾을 것인가. 바로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진광예가 강에 빠지던 날, 그곳에 살던 한 잉어가 실은 강의 용왕이었다. 진광예가 오래 전 장안 장터에서 낚시꾼에게 잡힌 금빛 잉어를 보고 측은히 여겨 돈을 주고 사서 강에 풀어준 적이 있었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용왕은 진광예의 시신을 십팔 년 동안 강바닥에 보존해 두었던 것이다.
용왕은 진광예의 시신에 환혼단을 넣어 그를 되살렸다. 진광예는 물속에서 눈을 뜨고 수면 위로 올라왔다. 온교와 강류가 달려가 그를 붙잡았다.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되었다.
나중에 강류는 홍복사로 돌아가 승려가 되었다. 법명은 현장(玄奘), 이것이 훗날 삼장법사가 되는 인물의 어린 시절이었다. 아버지 진광예는 관직을 회복하고 어머니와 함께 편안한 여생을 보냈다.
그 비통한 세월은 끝났으나, 현장을 기다리는 더 큰 여정은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