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회 법사가 서쪽으로 와서 여국을 만나다——손오공이 꾀를 내어 연화에서 벗어나다
서량여국에 들어선 삼장 일행이 여왕의 환대를 받는다. 여왕이 삼장에게 반해 혼인을 요청하고, 손오공이 삼장이 응하는 척하며 탈출 계획을 세워 나라를 빠져나온다.
서량여국 성문 앞에 다다랐다. 성 안 거리를 가득 메운 것은 모두 여인들이었다. 장삿꾼도, 농부도, 관원도 모두 여자였다.
거리 사람들이 일행을 보자 환호성을 질렀다.
"사내가 왔다! 사내가 왔다!"
저팔계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형님, 이 나라가 전부 여자로만 이루어져 있습니까?"
손오공이 저팔계의 귀를 잡아당겼다.
"정신 차려라. 여기서 딴생각 품었다가는 큰 봉변을 당한다."
저팔계가 고개를 끄덕이는 척하다 여전히 두리번거렸다.
역관에 짐을 풀었다. 삼장이 통행증을 여왕에게 올리려 하는데, 먼저 소문이 번진 듯했다. 여왕이 직접 사신을 보내 삼장을 궁궐로 청했다.
여왕은 아름다운 용모에 위엄이 있었다. 삼장을 보자 곧 눈빛이 달라졌다.
"당나라 법사께서 이렇게 뛰어난 풍모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삼장이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소승은 서천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중입니다. 통행증에 도장을 찍어주시면 곧 길을 떠나겠습니다."
여왕이 고개를 저었다.
"법사께서 이 나라에서 짝을 맺어 주신다면 어찌 못 가시겠습니까?"
삼장의 얼굴이 굳었다.
손오공이 재빨리 삼장 곁으로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스승님, 일단 응하는 척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탈출시켜드리겠습니다."
삼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거짓으로 약속을 할 수는 없다."
"지금 거절하면 통행증을 내줄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탈출할 때까지만입니다."
삼장이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여왕이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삼장이 자리에 앉아 여왕과 마주했다.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시종들 틈에 섞여 주위를 지켰다.
여왕이 삼장에게 술잔을 건넸다.
"법사, 내일 혼례를 올립시다."
삼장이 조용히 받아들며 말했다.
"폐하, 그 전에 제 제자들이 서천으로 가는 길을 안내할 수 있도록 통행증을 먼저 내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여왕이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통행증에 도장이 찍혔다. 손오공이 눈짓을 했다.
저팔계와 사오정이 슬그머니 말과 짐을 챙겼다.
잔치가 무르익은 사이 손오공이 삼장을 부축하며 일어섰다.
"스승님, 제자들에게 인사를 시키겠습니다."
여왕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손오공이 삼장을 안고 구름을 타고 솟아올랐다.
여왕이 창문 밖을 내다보며 소리쳤다.
"어디 가십니까!"
"서천으로 가겠습니다. 폐하, 평안히 계십시오!"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많아도,
법사의 마음은 서쪽 하늘을 향했다.
여왕의 은정이 깊어도 잡아둘 수 없고,
불심 하나가 모든 욕망을 넘어선다.
여왕이 한참 하늘을 바라보다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일행은 이미 성 밖 길 위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