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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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고증

별칭:
후스 《서유기 고증》 Xiyouji Kaozheng - 胡适《西游记考证》 - Xiyouji Kaozheng - 胡适《西游记考证》 - Xiyouji Kaozheng

1923년 후스가 엮어낸 서유기 현대 고증의 효시로, 오승은의 저작권과 '유희설'을 처음으로 제기한 작품이다.

《서유기 고증》은 중국 현대 학술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서유기 연구의 개척지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호적(胡適)이 쓴 두 편의 초고를 합쳐 엮은 것인데, 첫 번째 초고인 〈서유기 서문〉은 1921년 12월 《아동도서관관간》에 발표되었고, 두 번째 초고인 〈서유기 고증〉은 1922년 7월 《노력주보·독서잡지》 제6호에 실렸다. 1923년 상하이 아동도서관에서 왕원방이 구두점을 찍은 신식 구두점본 《서유기》를 출간할 때, 호적은 이 두 원고를 합쳐 장문의 〈서유기 고증〉으로 수정해 권두에 실었다. 이 글의 단행본은 이후 《호적문존》 제2집(아동도서관 1924년 11월 초판)에 수록되었다. 이 글이 남긴 가장 중요한 학술적 공헌은 두 가지다. 첫째, 루쉰(주예재)이 전사한 《회안부지·예문지》, 《정언장편》, 《완규생다여객화》 등의 자료를 근거로 가정 시기 회안의 세공생이었던 오승은이 《서유기》 백회본의 저자임을 논증함으로써, 청나라 때부터 내려온 '장춘진인 구처기' 위탁설이라는 낡은 통설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이다. 둘째, 《서유기》의 '유희설'을 처음으로 제창했다는 점이다. 즉, 이 책은 '매우 흥미로운 익살 소설이자 신화 소설'일 뿐이며, 굳이 대도의 미묘한 가르침이 담긴 내단술의 비유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송·명대의 심성학이나 단도 학설로 이 책을 해석하려 했던 청대 유학자 진사빈, 장서신 등의 견해에 반대했다. 호적의 이러한 주장은 동시대 루쉰의 《중국소설사략》과 서로 보완하며 20세기 상반기 서유기 연구의 주류 담론을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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